in a single bounce

[부산태종대] 노을맛집 태원자갈마당 해녀촌 본문

여행

[부산태종대] 노을맛집 태원자갈마당 해녀촌

보물서랍 2021. 12. 20. 01:28

 

부산태종대 태원자갈마당

 

부산에 살아도 선뜻 가기 어려운 관광지가 바로 태종대입니다. 부산의 서남쪽 영도라는 섬의 끝자락에 있기 때문에 부산 사람들도 큰맘 먹고 나들이 가야 하는 곳이랍니다.
어렸을 때는 일 년에 한 번은 갔었던 것 같은데, 기억은 가물가물합니다. 동생들과 함께 찍은 오래된 사진 한 장이 남아 있지 않았다면 그 기억도 묻혀버렸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큰 손을 잡고 울툴불퉁한 자갈밭을 걸었던 그 느낌만큼은 태종대의 자갈밭에 대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좀처럼 어디 가고 싶다고 하지 않는 어머니가 태종대에 가보고 싶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지하철도 없고 교통편이 불편해서 쉽게 가지 못하는 까닭에 혼자서 가기는 힘드셨던 모양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린 시절 나들이 갈 때도 어머니는 함께 가시는 일이 별로 없었던 것 같아요. 동생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까닭에 아버지가 항상 저만 데리고 다니는 일이 많으셨거든요.

한 장 남아 있는 태종대 나들이 사진도 아버지가 찍어주신 사진입니다. 그때는 동생들도 함께 있는데, 어머니는 안 오셨던 것 같네요.

 

부산으로 시집와서 평생을 사셨지만 태종대 가 본 지가 너무 오래되신 어머니와 함께 짧은 여행을 떠났습니다. 매표소 입구에서 평소에 드시지 않던 핫도그와 오뎅 국물까지 야무지게 드시는 걸 보니 놀러 갈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고 오셨나 봅니다.

 

어머니가 오래 걷지 못하시니 태종대를 한 바퀴 돌아 주는 다누비 열차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등대도 보고 전망대에서 바다도 원 없이 보고 내려오다가 문득 자갈 마당을 가보고 싶어 졌습니다.
어머니는 자갈밭을 걸어야 한다는 것에 내키지 않아 하셨지만, 그곳의 추억이 태종대에 관한 기억의 전부라고 해도 좋은 까닭에 우겨서 가기로 합니다. 자갈마당이 두 곳이라 좀 헷갈렸지만, 유람선이 출발하는 '태원자갈마당'이 추억의 장소입니다. 조개구이로 유명한 자갈마당은 다른 곳이랍니다.

 

 


예전에는 돌계단을 내려갔는데, 지금은 나무계단을 깔끔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꽤 긴 계단이라 어머니는 자꾸만 기다릴 테니 혼자 다녀오라고 하시지만 모른 척하고 어머니 손 꼭 잡고 내려갑니다.

 

어렸을 적에는 꽤 넓었던 것 같은데, 지금 보면 아담한 자갈해변입니다. 여름엔 해수욕도 하고 바다를 향해 자갈돌을 던지기도 하면서 놀았던 것 같네요. 돗자리 한 장 깔아놓고 어머니가 싸 주신 음식도 먹고 그랬습니다. 물놀이하느라 입술이 파랗게 되도록 바다에서 나오지 않는 남동생을 불러내느라 애썼던 기억도 납니다.

 

해변 한 켠에는 해녀들이 하는 가게가 있어서 해산물을 먹을 수 있어요. 어렸을 때 아버지와 멍게를 먹었던 기억 이후 처음으로 다시 가 보기로 했습니다.

 

앞쪽에 벌써 한 팀이 자리 잡고 있어서 우리는 뒤에 앉았습니다. 뒷모습이 보이는 풍경도 나름 괜찮습니다.
어머니는 77년 인생에서 이렇게 바닷가에 앉아서 해산물을 드시는 것이 처음이라고 합니다.

 

태종대 구경하고 내려오는 길에 느지막이 왔더니 해가 넘어가는 풍경은 덤입니다. 완전 노을 맛집이네요.

 

 

해삼과 멍게 한 접시 그리고 클라우드 한 병 주문했습니다. 멍게는 상큼하고 해삼은 달달합니다.
맥주 한 잔을 마시니 바닷물 속으로 잠기려는 해가 더욱 붉게 보입니다.
어머니는 이걸 드시고 다음 날 자고 일어 나니 눈이 밝아졌다고 하셨습니다. 역시 해녀들이 바다에서 건져 올린 것들이라 신선해서 몸에 보약이 따로 없는 듯합니다.

 

 

어느새 앞의 손님들은 떠나고, 해는 점점 떨어져 진한 오렌지빛이 바다에 번져갑니다.
잔잔한 파도가 그리는 무늬를 따라 노을빛도 밀려왔다 밀려가곤 하네요.

 

오륙도를 돌아가는 마지막 유람선이 돌아옵니다. 바다 위에서 노을을 보는 느낌은 어떨지 궁금해집니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의 무리가 해변에서 사진을 찍기도 하고, 해녀촌으로 다가오기도 합니다. 아저씨 한 분이 와서 메뉴를 묻고는, 딸아이가 못 먹어서 그냥 가신다고 합니다. '딸아이'는 20대 초반쯤으로 보이는데, 어릴 때 이런 추억을 가지지 못했나 봅니다.

태종대 자갈마당의 추억을 인생에 남겨 주신 아버지한테 고마운 마음이 듭니다. 살아 계셨으면 참 좋았을 텐데 하는 바보 같은 생각을 잠시 해봅니다.

 

 

태종대는 생각보다 넓어서 다 둘러보려면 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맘먹고 한 번씩 가는 곳이라 태종대에 간다면 빼먹지 말고 들러서 멍게 한 접시 먹을만한 곳이랍니다. 해변이 아늑해서 바람도 그리 많지 않고, 관광객들도 이따금 유람선 타고 내리는 사람들 정도라서 붐비지도 않습니다. 두런두런 얘기하고 함께 사진 찍고 바다 보면서 멍 때리기 좋은 장소랍니다.

반응형
Comments